2001년 9월 28일에 개봉한 영화 ‘봄날은 간다’는 화려하지도, 극적이지도 않습니다. 그런데 이상하게도, 시간이 갈수록 이 영화가 더 자주 떠오릅니다.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, 어떻게 아무 말 없이 끝나버리는지를 이토록 조용하게,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보여준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.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.
“사랑이 어떻게 변하니”라는 말,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
‘봄날은 간다’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대사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. “사랑이 어떻게 변하니.”
예전에는 그 말이 가슴 아프게만 들렸습니다.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조금은 담담하게, 그리고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.
사랑은 변합니다.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애써 외면할 때, 그 사랑은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.
상우가 그랬습니다. 눈앞에서 멀어져가는 은수의 마음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.
자신의 감정에도, 상대의 변화에도 솔직하지 못했던 그 시간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.
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었을 것입니다. 말하지 못한 감정이 더 오래 남는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던 시간. 이 영화는 그 감정을 아주 조용히 건드리고 지나갑니다.
허진호 감독이 만든 건 멜로가 아니라 ‘사람의 거리’입니다
이 영화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습니다. 누군가가 죽지도 않고, 격정적인 사랑도 나오지 않습니다.
하지만 그 대신, 사람 사이의 감정의 거리가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를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담아냅니다.
허진호 감독은 말보다 침묵을 택했고, 설명 대신 여운을 남겼습니다. 유지태와 이영애의 연기는 그 여백을 완벽하게 채웁니다.
특히 은수가 멀어지는 장면들은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걸 말해줍니다.
이 영화는 “사랑은 끝났다”라고 말하지 않습니다. 그저 한 사람이 조금씩 멀어지고, 다른 한 사람은 그걸 느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.
그리고 그 침묵이 관객에게 오래도록 남습니다.
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프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
이 영화를 처음 본 건 20대 초반이었습니다. 그땐 잘 와닿지 않았던 장면들이 지금은 눈빛 하나, 대사 하나에도 마음이 찌릿해집니다.
특히 이별의 장면들보다 아무 일도 없는 장면들이 더 아픕니다.
같이 있는 듯하지만, 이미 멀어진 두 사람의 거리. 그 거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.
사랑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상우나 은수 중 한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.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.
그래서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자기 이야기처럼 다가옵니다.
‘봄날은 간다’는 봄처럼 찾아와 조용히 지나갑니다. 하지만 그 감정은 아주 오래, 마음속에 머물러 있습니다.
그리고 문득 떠오릅니다. 아무 일 없는 어느 봄날, 그냥 생각이 납니다.
총평
20년이 지났지만 이 영화가 여전히 이야기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.
그땐 몰랐던 감정이, 지금은 너무 잘 알겠기 때문입니다.
사랑이 변하는 게 슬픈 것이 아니라, 그걸 인정하지 못했던 내가 더 아팠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