누군가와 오랜 시간 사랑을 하다 보면,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오르곤 합니다. "우리, 정말 사랑하고 있는 걸까?"
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여도, 마음이 서서히 어긋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. 그런 미묘한 감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습니다. 바로 ‘클로저(Closer)’입니다.
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, 그냥 어른들의 복잡한 연애 이야기로만 느껴졌습니다.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관계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된 지금 다시 보니,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마음이 아플 정도로 다가오는 영화였습니다.
이 영화를 오래된 연인이 함께 보면 좋다고 말하는 이유, 지금부터 천천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.
사랑 - "사랑한다고 말하면, 그게 사랑일까?"
클로저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. 댄, 앨리스, 안나, 그리고 래리. 모두 ‘사랑’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만나게 됩니다.
하지만 그들이 진짜 사랑을 했던 걸까요? 아니면 단지 외로움을 채우고 싶었던 걸까요?
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서로를 끊임없이 시험하고, 더 나은 사람이 있을지 머뭇거리고, 상처를 줄 걸 알면서도 결국에는 상처를 주고야 마는 장면들.
그 모든 모습이 너무 현실 같아서 씁쓸했습니다.
연애가 길어지면, 때때로 '진심'조차 습관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. 상대가 좋아하는 것도, 어떤 말을 원할지도 잘 아니까 마치 정답을 외우듯 사랑하게 됩니다.
하지만 클로저는 그 익숙한 틀을 과감히 깨버립니다. 거짓말이 드러났을 때,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놨을 때, 비로소 그 사람의 진짜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.
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. "사랑한다고 말했지만,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는 언제쯤 알 수 있을까?"
진심 - 가장 솔직한 대사는, 가장 잔인했습니다
클로저에는 인물들의 감정을 날카롭게 찌르는 대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. 그중에서도 가장 잊히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.
“Because I'm a liar.”
“I don't love you anymore.”
“You're nothing.”
이런 말을 들었을 때, 정말 끝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. 그전까지는 부정하고, 애써 붙잡아보려 했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꺼져버리는 순간이기도 합니다.
하지만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, 이 영화 속 '잔인한 말들'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.
거짓말보다 더 아픈 건, 상대의 진심이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없다는 걸 알아버리는 순간이니까요.
오랜 연인은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, 어느 순간부터는 말하는 것을 조심하게 됩니다.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, 혹은 내 감정이 식어버렸다는 걸 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.
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갑니다. 클로저는 그것을 ‘말’로 보여줍니다.
모든 것을 털어놓고, 진심을 쏟아내는 순간 관계는 무너질 수도 있지만, 그것이 결국 진짜 끝이자 해방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.
이별 - 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, 비로소 끝이 납니다
‘클로저(Closer)’라는 제목은 직역하면 ‘더 가까이’라는 뜻입니다.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가까워지기는커녕, 서로를 원하면서도 점점 멀어져 갑니다.
사랑이란, 때때로 그런 것 같습니다. 가까이 가려 할수록 더 상처를 주고, 알아갈수록 덜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.
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‘이별의 예의’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. 예전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 이별이라 믿었지만, 이 영화를 보고 나니, 그것은 어쩌면 도피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진짜로 관계를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상대 앞에서 ‘끝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. 그리고 그걸 말하는 용기는, 때때로 사랑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알려줍니다.
이 영화를 함께 본 오랜 연인이라면, 아마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나누게 될지도 모릅니다.
“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?”
“서로를 정말 알고 있는 걸까?”
“그리고…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까?”
총평
클로저는 예쁘지도, 달콤하지도 않은 연애 이야기입니다.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진짜 같고, 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을 때 보면 묘하게 마음을 정리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입니다.
오랜 연인이 함께 보면 좋은 영화라는 말, 괜히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.
사랑이 익숙함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그 시점에, 서로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.
지금, 당신 곁에 있는 사람과 이 영화를 함께 보시길 바랍니다. 그리고 조용히, 이렇게 물어보세요.
“넌 지금, 진심이야?”